오늘로 이곳 서우구치소에 도착한지 엿새째를 맞이합니다. 갑작스레 차가와진 날씨속에 모두 무탈하신지요? 이제야 소식전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인 징역살이는 아니지만, 새로운 공간에 몸도 마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손 편지를 쓰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어서인지 머릿속에 맴도는 말들이 손끝에서 선뜻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운동을 나갔다가 첫눈을 맞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흩날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이내 함박눈이 되더군요. 사방이 차가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운동장에 서 있었지만, 첫눈의 감상마저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제 평생에 가장 기억에 남을 첫눈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사진=손기영 기자)
조계사를 나온 이후 많은 분들의 걱정, 기대, 바램과는 달리 다소는 힘없는 모습으로 검거된 점 먼저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작은 부주의함이 동료들과 뜻을 함께하는 많은 분들께 작지 않은 누가 되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의 신중함과 무거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일 청계광장에 촛불이 처음 밝혀진 이후 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고 큰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미쳐 감사하다는 말씀도 다 드리지 못한 것이 또한 마음의 빚이 됩니다. 먼저 극도의 긴장과 누적되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책임과 헌신을 다해준 국민대책회의 상황실 파견자 동지들에게 깊은 신뢰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가장 힘들고 분주했던 시기에 시청광장 현장 상황실을 지켜주신 기형노 국장님, 석건호 국장님, 양민주 선생님, 오평석 동지, 김상민 동지 그리고 자원봉사자분들에게 늦었지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노고와 헌신이 없었다면, 72시간 릴레이 농성과 6.10 70만 군중의 감동적인 촛불행진을 감히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한 많은 참가단체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중에도 「나눔문화」의 헌신적이고 창조적인 활약에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촛불소녀와 함께한 나눔문화의 활동은 매일 새로운 감동과 영감 그리고 문화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전문가 자문회의의 열성적인 활동에도 감사드립니다.
우석균 선생님, 우희종 교수님, 박상표 선생님, 송기호 변호사님 그리고 변혜진 동지의 헌신적인 활동 때문에 우리는 광우병 논쟁에서 항상 우위에 설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로서의 용기와 전문성을 유감없이 보이신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함께’ 동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거리에서 많은 날들을 승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동지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는 형제 같은 김광일 동지가 뜻을 세운 바대로 끝까지 투쟁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 감사한 분들은 네티즌 여러분 그리고 국민여러분입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들풀처럼, 우리가 쌓아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순간 일어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우쳐 주셨습니다. 비록 지금광장과 거리에 촛불이 꺼졌다고 하나, 여러 날 가슴속에 여전히 빛나고 있는 촛불을 저는 믿습니다.
조계사에 들어간 이후 총무원장 스님이하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 그리고 총무원 직원들과 종무소 직원들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떠나면서 아무런 기별도 인사도 드리지 못한 점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삼귀오계를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한 마음 잊지 않고 늘 참회하고 정진하겠습니다. 118일간 조계사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후원금과 후원물품 그리고 따뜻한 격려의 방문과 말씀에 다시금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특히 매번 손수 만든 정성스러운 음식을 보내주신 봉천동 아주머니(성함조차 모르는 결례를 범했습니다)께 감사드리며, 조계사를 떠나면서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많은 지인들, 국민들께서 보내주신 지원과 사랑 늘 기억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조계사에서 농성했던,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서 수형생활 하고 있는 6인의 수배자들 어떤 순간에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제한된 신문 지면을 통해 접하는 정보지만, 우리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가 깊고 어두운 것 같습니다. 경제가 위축될수록 더욱 곤궁해질 민생이 걱정입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이 신뢰할 대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기업도 정부도 국민이 신뢰할 만한 비전, 위기관리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확산되는 지금 많은 나라의 정부는 신뢰의 형성 또는 회복을 위한 여러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강화를 검토하고 재정확대를 통한 공공부문의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려는 조치들을 정부의 신뢰를 형성,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명박 정부는 부자들만을 위한 감세정책에 집착하고 있으며, 재벌기업과 건설자본을 위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라는 정책의 모순을 차치하더라도, 적자재정 평성을 무릅쓰고 지출을 늘리려는 분야가 대부분 건설부문인 점을 보더라도 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방향과 수혜대상이 무엇이며,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그 결과는 우리 사회를 더 깊은 불평등과 차별의 늪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그리 과장되었다 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의 촛불은 부자와 특권층 위주의 정책을 매섭게 비판하며 민생을 살리는 촛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또한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형태만이 아닌, 정책이 만들어지고 공론이 형성되는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수단, 방법을 통해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확인된 네티즌들과 국민들의 창조적 역량이 다시 한 번 발휘되길 기대합니다.
민주적 기본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각종 압법추진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것이 어려운 싸움임을 새삼 느낍니다. 촛불의 성과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전략적 의제를 가다듬고 정치적 유능함을 발휘해 국민의 신뢰 속에 촛불운동과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길 기대해 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감옥에 죄지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법의식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다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개중에는 한 순간의 실수나 판단착오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생계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두려운 점은 규칙을 어기고 타인을 해하더라도 일신의 부귀와 안위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는 풍토가 갈수록 만연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잘 나가는 기득권층이ㅏ 보이는 모습이 이와 다르다 할 수 있을까요?
큰 눈이 있었다는 소식에 지방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됩니다. 내일은 오랜만에 부모님께 편지를 드려야겠습니다. 불어 닥친 한파에 몸상 하는 일 없이 모두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루를 백년같이 무겁고 귀하게 살겠습니다.
2008년 11월 20일
서울구치소에서
박원석 올림
ps. 아래글은 박원석 실장이 서울구치소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인권법률팀으로 보내온 편지입니다.